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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입기의 수사학 남성복의 역사적 이해

설득을 위한 모든 것을 연구했던 그리스의 수사학(rhetoric)은 단순한 대중연설의 기술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어진 경우에 가능한 모든 설득 수단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수사학을 정의하고, 이성적(logos) 텍스트와 청중의 감정(pathos), 연사의 캐릭터(ethos) 까지 모두 레토릭의 영역에 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설득 수단이라는 것이죠.  

분위기를 위한 옷입기는 일종의 수사학적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설사 애써 숨겼다 하더라도, 언제나 의미를 전달합니다. 언어처럼 분명하게 읽혀요. 각각의 미세한 요소가 단어이고, 그것들이 조합되어 분위기라는 하나의 문장이 됩니다. 사람의 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떠올려 볼까요? 자세, 식사습관, 걸음걸이,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 제스쳐, 옷차림, 머리모양, 목소리의 결, 사용하는 단어, 대화의 방식, 문장에서 드러나는 사고방식과 생각, 향기와 체취, 청결함, 소지품의 종류와 관리 상태,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침묵을 사용하는 방법...

이런 비언어적 형태의 말하기 방식은 강력합니다. 아주 감정적이고, 매우 에토스적이며, 때로 상징적이죠. 단정하게 수트만 입던 스티브 잡스가, 왜 갑자기 프레젠테이션에 청바지를 입고 뉴발란스를 신고 나타났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매 순간 연단에 서는 것입니다. 당신이란 존재를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비언어적 웅변으로서 옷입기의 수사학이 있다면, 그를 위해 수트를 읽는 법도 있습니다. 옷의 형식에는 보란 듯 읽히는 텍스트도 있지만, 모르면 읽을 수 없는 컨텍스트도 있어요. 그래서 무턱대고 남들이 좋다는 대로 입기보다는, 천천히 살펴보고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수트는 가장 남성적인 옷입니다. 따라서 남성미를 표현하기 위해 발전한 수사학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수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란, 그러니까, '이상적인 남성미에 대한 각 문화의 합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오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온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교해 봅시다. 두 가지 수트는 서로 다른 남성미를 바탕으로 남성복의 진화를 분명하게 보여준 클래식입니다. 

John Bull, national personification of Great Britain, 1914 ©

 

영국 남성의 정체성, 젠틀맨

영국의 클래식 수트는 대체로 제복처럼 단정하고 각이 진 형태에 투박한 박음질로 특징지어지며, 뒤이어 올 이탈리안 수트와 비교하여 수수한 느낌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런 수트 디자인이 영국인들의 정체성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당시 영국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영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2006)』 의 가장 첫머리에 'John Bull'이라는 상징적인 영국인을 언급합니다. 18세기 영국인들은 제국주의적 성공을 자축하며, 영국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과연 '영국인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정의하고자 했어요. 그렇게 그려낸 자화상이 신사(gentleman) 입니다. "근면과 자조를 실천하며 말이 없고 진지한 영국 남성" 으로서의 젠틀맨은 이때 탄생한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은 봉건 영국의 한 계급이었던 젠트리(gentry)를 이르던 것입니다. 젠트리는 귀족이나 기사처럼 높은 계급은 아니지만, 땅을 소유하고 자신의 가문을 이룬 평민 지주였어요. 이들은 봉건질서가 해체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사회의 실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계급적 의미가 강한 명칭인데, 혁명 과정에서 제거되기는 커녕, 가장 바람직한 현대 영국의 자화상으로써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건 다른 국민국가에선 보기 힘든 일이었어요.

젠트리들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기존 질서를 전복하려 들기보다,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만들었지요. 그들은 사라진 기사도 정신을 흡수하여 스스로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갔고, 무급으로 봉사하거나 자선을 행하는 등 사회적 책무를 다했습니다. 디킨스의 『Great Expectations (1860~61)』과 같은 당대의 소설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신사답고 그렇지 않은지를 배웠습니다. 신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감정을 감춥니다. 점잖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고 자제합니다. 공민으로서의 의무와 노력을 다하며, 조국과 자신이 속한 제도에 충성을 다합니다. 

새로운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로 받아들여집니다. 사회 지도층은 신사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고, 노동계급조차 자발적으로 신사적 가치관을 획득하고자 했습니다. 영화 『Kingsman (2014)』을 보면, "수트는 신사의 갑옷이며, 신사는 현대판 기사" 라는 노골적인 대사가 나옵니다. 출신과 상관없이 노력하면 신사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것도 꼭 닮았죠. 영화는 사뭇 귀족적인 신사를 과장되게 묘사하며 희화화하면서도, 결국엔 하층민인 주인공이 신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젠틀맨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준 옛 기사도 정신의 흔적은 지금도 스포츠맨십에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영국은 근대 스포츠가 탄생한 곳입니다. 서로 죽여야 끝나던 중세적인 승부에 심판을 세우고, 미리 선포된 규칙 아래 '패배는 용감하게, 승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역설했습니다. 그것이 신사의 태도이고, 바람직한 남성성이라는 뜻이죠.

영국인의 남성미는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영국인 스스로 확립한 역사적 정체성입니다. 공예적이고 물질적인 아름다움이 충만한 이탈리아 수트와 비교하면 영국의 수트는 지극히 정신적인 옷이어서, 영국인들의 정신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수트의 완성도나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정체성의 표현이 훨씬 중요합니다. 영국인들의 미감이란, 신사적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Brooklyn Museum, 1999


정신문화의 반영인 영국의 수트

이탈리안 수트의 섬세하고 유려한 공예적 완성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영국의 수트를 보면 좀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장인적 기교와 아름다움보다, 실용과 격식에 맞는 형식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새빌로우의 모든 매장을 들어가 옷을 경험해 봤습니다만, 하나같이 공예적인 미감이 부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느질에서 섬세한 감정이 느껴지기보다, 의식적으로 '너무 세밀하고 조밀하게 꾸미면 안 된다'고 자제한 인상이 강합니다. 

이런 태도는 남자다움(manliness)이라는 가치에서 비롯됩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그들의 제국적 성취가 남성적 자질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고 해석했습니다. 남자다움은 중간계급 남성들의 가치이자 이상이었고, 가장 소중하게 숭배하는 가치였다고 박지향은 지적합니다. 이 남자다움은 세련됨이나 사회성에는 부합하지 않는 투박한 성질입니다. 세세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만들기와 실용성을 우선하는 '남자다운' 미감이 더해지면서, 마치 제복과 같은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이죠. 

영국 특유의 실용성과 미적 무심함에 대해, 박지향은 독일 출신의 영국 미술사가 니콜라스 페브스너의 말을 인용합니다. "영국에는 미켈란젤로도 뒤러도 벨라스케스도 없는데, 이는 영국의 국민성이 실질적 감각과 이성, 그리고 관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관용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획득한 순간, 그들은 예술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강렬함을 잃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이해에서 우리는, 복잡한 문화역사적 결과물에 대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이탈리아와 영국의 복식이 어떻다고 구분하고, 일방을 편들거나 흉내 내는 것이 전부여서는 곤란합니다. 상대를 배운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기반성을 동반합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 같아 보였던 영국에서는 YBAs를 필두로 모든 표현 분야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하나로 전체를 이야기하거나, 단편적인 특성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거나, 부티크에서 옷을 판매한다는 식의 전통적인 개념들도 모두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 문학, 시각예술,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모든 것에 연결하고 통합(integration)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국적인 정체성이 단단하게 확립되어 있기에 이런 변화와 진보가 가능한 것입니다. 애초에 정신에 따른 격식을 정한 것일 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격식을 해체하고 형식을 통합하더라도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적 형식이나 오늘의 혁신 어느 한 쪽에만 주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빠른 변화를 꾸역꾸역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바꿔나가는 습관도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제대로 읽어야 하고,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과연 '자기다움'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로부터 새로운 정신문화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Michelangelo's David 


이탈리아의 고전적 남성미

​'남성미'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다비드나 아도니스 같은 고대 조각상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예로부터 인체의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변치 않는 돌에 새기곤 했습니다. 정밀한 조각상의 완벽한 입체와 비례감에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되죠. 이탈리아는 그런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고전적 미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의 남성미는 멋진 비례와 풍부한 입체감에서 비롯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이탈리아로 한정하긴 좀 어렵긴 합니다. 어쨌든 그리스-로마 문화는 서양의 원류이니까요. 서구 예술은 넓고 탄탄한 가슴을 남성미의 원형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미가 느껴지는 조각상들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분명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세기의 미국 코믹북에서 남성 히어로가 표현되는 방식은 어떤가요. 두툼한 가슴을 과장되게 부풀려 내민 반면, 그에 대비해 다리는 길고 얇게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지요. 오스카 트로피 같은 상징물은 별 다른 디테일이 없지만, 누가 봐도 멋진 남성의 실루엣이죠.  

넓고 탄탄한 대흉근, 그 두터운 몸통에서 발목까지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수직적이고 우람한 조형미가 남성의 대표적인 미감입니다. 이는 꼭 서구인들만의 미감이 아닐지도 몰라요. 우리가 자신감을 표현하거나 과시할 때, 반대로 직면한 어려움 앞에서 의지와 포부를 보여야 할 때에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부풀려 보여주려 합니다. 하지만 겁을 먹고 움츠러들 때, 자세가 낮아지면서 어깨가 올라와 본능적으로 목을 보호합니다.  

이는 오랫동안 남성의 복식이 발전해 온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꾸준히 가슴을 강조하면서, 약점인 목을 감추려는 의도가 감지되지요. 바로크와 같은 과장된 시대에 특히 그런 경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과시에서는 우아함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장식과 옷은 점차 의도를 감추고, 은근히 미감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클래식 수트는 그렇게 완성된 고전입니다. 

영국에서 발명된 수트는 이러한 남성성을 바탕으로, 영국인 특유의 '남자다운' 미감과 풍토에 맞춰 제작됩니다. 당시 영제국은 군사 강대국이긴 했지만, 유럽의 고전 문화에 대한 동경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류층에서는 자녀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동안 배운 문예를 확인하고 체험하는 수학여행을 보냈는데, 영국에서 프랑스를 지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그랜드투어(gran torismo)가 그것이었습니다. 

아직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이것은 글자 그대로 어렵고 '장대한 여행'이었어요. 장기간의 수학여행을 마친 이들은 유럽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였던 나폴리에서 휴식을 취하며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곤 했습니다. 그랜드 투어는 졸업과 성년의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귀족집 자제들은 자신의 성숙을 표현할 남성복이 필요했어요. 물론, 휴양지를 찾은 유럽의 귀족들도 남부 이탈리아의 온난한 기후에 맞는 옷을 새로 해 입고자 했죠. 그래서 영국식 수트 기법이 나폴리에도 전해집니다. 

이탈리아인들의 눈에 영국의 수트는 남성적이긴 하지만, 아름답지 않았나봅니다. 처음 변화가 시작된 곳은 '런던하우스'라는 비스포크 아뜰리에였어요. 젠나로 루비나치(Gennaro Rubinacci)와 빈첸초 아톨리니(Vincenzo Attolini)는 부드럽고 가벼운 이탈리아 원단을 쓰고, 마치 셔츠처럼 보이는 수트 어깨라던가, 휘어진 포켓 디테일과 같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변화한 디테일들은 점차 고전적인 남성미를 한껏 드러낼 수 있는, 그러니까 몸의 양감을 살리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옷을 구현하기 위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나폴리 마에스트로들은 이렇게 발전한 새로운 옷 만들기를 신학파(scuola nuova)라고 불렀습니다. 키톤(chiton)과 토가(toga)로 상징되는 드레이프(drape)에 대한 오랜 미감과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이, 완성된 남성복 형식을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 나폴리 마에스트로들은 철저히 몸에 순응하는 옷을 만들고자 했고, 옷을 입체화하는데 모든 역량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체화하여 몸에 맞춘다는 관념이, 클래식 비스포크가 손바느질에 집중하게 된 중요한 계기입니다.

 


분위기의 풍미를 돋우는 비스포크 수트

​나폴리의 마에스트로들은 남성의 몸에 흐르듯 순응하는 수트를 디자인하면서, 가슴의 양감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고전적인 남성미와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가슴의 양감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디테일은 가슴, 라펠, 슬리브헤드 세 부분입니다. 이 세 가지 디테일에 풍성한 양감이 생겨야 남성미가 잘 살아납니다. 하지만 부드럽고 힘 없는 원단으로 드레이프를 만들면서, 동시에 디테일의 입체감을 살리기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수트는 원단과 심지로 구성됩니다. 서로 다른 원단을 하나로 엮어, 몸을 따라 감싸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죠. 그저 단순히 끄트머리만 쭉 박아서 합치는 정도라면 굳이 고생스럽게 손바느질을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건, 심지 전체가 원단과 바느질로 딱 붙어서 나타나는 깊고 단단한 입체감입니다. 쉽고 편하게 접착제로 붙이거나 기계로 박음질을 해서는 뻣뻣하게 고정되어서 자연스럽지 않아요. 심지와 원단을 촘촘한 손바느질로 엮어야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입체가 완성됩니다. 

옷에서 입체의 역학은 원단과 심지의 밀접한 관계로부터 발생합니다. 원리는 상식적입니다. 입체인 물체는 필연적으로 안과 밖을 가지게 됩니다. 입체의 곡면에서 안과 밖을 각각 원단과 심지로 생각해 봅시다. 두 선이 같은 속도로 진행하면 직선입니다. 안쪽 선이 더 느리게 진행하면 곡선이 됩니다. 바깥 선이 더 길어지면서 안쪽으로 휘어지겠죠. 그렇습니다. 원단과 심지를 바느질로 엮을 때 심지가 원단보다 한 올이라도 더 짧으면, 입체적인 곡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평평한 원단과 심지를 손으로 잡아 꺾고, 조금씩 밀거나 당기면서 수많은 바느질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정한 휘어짐을 만들면서, 각각의 개별적인 휘어짐들이 서로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연결해 나갑니다. 여기서 바느질 한 땀은, 3차원의 위치값을 가진 한 점입니다. 서로 다른 높이의 점들이 모여 양감을 가진 입체면을 이룹니다. 간격이 촘촘할수록 부드러운 곡면이 되겠죠. 원리는 상식적이지만, 작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아요. 이것이 저 유명한 나폴리식 신학파(scuola nuova)의 핵심입니다. 

우리 몸은 입체입니다. 좋은 옷은 몸을 입체적으로 감싸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계는 없습니다. 다트선이나 허리선을 잡아서 곡선을 만드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적 분위기를 가장 우아하게 표현하는데 필요한 양감, 즉, 풍성한 가슴과 라펠, 슬리브헤드를 만들어 내려면, 손으로 바느질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손바느질은 그저 비싼 가격을 받기 위해, 손으로 만든 티를 내기 위해 하는 장식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테일러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에 뭐 하러 그렇게 공을 들이느냐' 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 작업의 결과물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글  김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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