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지구는 바다였다. 따뜻한 바다는 생명으로 가득했고, 미세한 생물로부터 시작된 유기적 활동은 끊임없는 순환과 변화를 이끌어냈다. 플랑크톤, 유공충, 산호 등에서 나오는 유기물이 해저 아래로 가라앉아 석회질 층을 만들어나갔고, 압축과 변성을 통해 퇴적암으로 치환되었다. 생을 다한 그들은 다시 가루가 되어 암석의 일부가 되었는데, 삶이 끝나도 물질로서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바다는 생명을 품고, 다시 암석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므로 바위는 또 다른 형태의 연속성을 담지하는, 움직이는 생명 또는 시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레리치 공간에 많은 부분 돌을 사용해온 것도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시간을 형태로 다루는 작업자이고, 돌은 자연이 뱉어낸 시간 덩어리이므로 둘은 궁합이 잘 맞았다.
‘바위를 깎아서 토르소로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위험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3개월의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덩어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돌은 옷을 만나 새로 되었다. 옷 또한 돌의 표면을 어루만지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두 물성이 마주한 자리에는 시간과 형태가 얽힌 하나의 패턴이 천천히 자라난다. 옷이 사람의 몸에서 자리를 얻고, 다시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글 김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