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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다 Interview 한정용

불 꺼진 가마 앞을 지나, 색색의 도편들이 어지러이 널린 연구실을 가로질러, 은행에나 있을 법한 밀폐문을 당겨 닫고 나서야, 뒤쫓아오는 소음들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다. 이번 판매전에 나온 학생 작품 하나하나, 그 의도와 사용한 흙과 그 안에 담은 도전적인 시도,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까지 숨 가쁘게 소개한 뒤, 앳된 청년들처럼 담배 한 대 급히 태우고 연구실로 숨어들어온 참이다.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가정집이라 해도 좋을 한 면과, 학자의 비밀스러운 지하 실험실과, 익히 봄직한 공방스러운 작업실 세 면이 있다. 버르장머리 없지만, 실험 선반에 먼저 눈이 간다. 거기엔 전국 각지에서 잡아온 흙덩이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고, 다양한 조성의 흙과 유약으로 구워낸 실험체가 잔뜩 채집되어 있다. 안쪽에 마련된 작업 공간에는 전동 물레와 막 돌려낸 사발들이 천천히 익어가는 중이다. 

이리저리 킁킁거리며 비밀스러운 연구실을 돌아다니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어느새 전혀 다른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 도공은 가만히 몸을 고정시키고 서서 절제된 손놀림으로 차를 개고, 인터뷰어는 그 앞에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참선한다. 사발에 격불하는 소리가 마치 목탁 두드리듯 공기를 착착 다독여간다. 향긋한 내음이 방 안을 채운다. 

 

(1) 보물 제1437호 '백자 달항아리'. 높이 41㎝, 입지름 20㎝, 바닥지름 16㎝, 몸통지름 40㎝

대철 : 예전에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요. 나중에 작가가 자신의 에세이 <바다에 기별>에서 말하기를,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로 하루 종일 고민했다는 거예요.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이고 객관적인 세계의 서술인데, "꽃은 피었다"라고 쓰면 들여다보는 사람의 의견과 정서를 담는다는 거죠. 한 글자 차이로 글에 담기는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사람이 자신의 작업에 이렇게 세밀하고 철저할 수 있구나.

뭔가를 만든다는 건, 다 그런 것 같아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작업에 임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부쩍 생각하게 돼요. 사물을 그렇게까지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잖아요. 그는 단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자신의 자리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로 집중하여 세상을 들여다본 거죠.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흙을 가지고 도자를 빚는 사람이고, 저희는 원단으로 옷을 짓는 사람이니, 비슷한 지점과 태도가 있을 것 같아요. 

정용 : 저는 우리 백자와 청자를 바라볼 때 특별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조선시대 가마는 서민 기물을 만드는 민요와 나라에서 관리하는 관요로 나뉘는데요. 좋은 백자는 대부분 관요에서 만들었어요. 깨끗한 백자 흙은 귀했거든요. 철분 없는 광맥에서 한 줌 한 줌 칼로 캐서, 광주 관요까지 지고 날라야 돼요. 도로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강길이 막히면 산길을 지게로 나른 거죠. 어렵게 모은 흙은 다시 불순물과 잡색을 제거하고, 거친 입자도 거르고, 점력을 높이려고 숙성까지 해요. 그리곤 온도 조절도 안되는 장작 가마를 때서 구워요. 

도공이 특별한 관직이었냐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저 순번에 따라 차출되어 노역하러 온 서민들이었어요. 마음이 없어도 의무적으로 해야 했단 말이죠. 농번기에 관청에서 부르면, 처자식이 굶고 있어도 도자기 만들러 가야 했어요. 이런 환경에서 달항아리가 나왔다는 건 놀라워요. 생각해 보세요. 저 덩치가 어마어마해요. 그 귀한 백자 흙을 저 만큼이나 모아서, 장작 가마에 넣은 거예요. 우리 중앙박물관 백자실에 가보면, 정말 거대한 달항아리(1) 하나가 서 있거든요. 지금에 견준다면, 거의 나로호 하나 쏘아 올리는 정도 아니었을까 해요. 

전체적인 수준이 좋을 수 없는 환경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중에 특히 빼어난 일부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요. 그 시대 수준을 혼자 뚫고 삐쳐 나오는 거예요. 국보, 보물 같은 것만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열악한 환경과 상황에서, 열심히 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물들이 등장하곤 해요. 저는 그걸 헌신이라고 표현해요. 이 사람들이 이걸 잘 만든다고 해서 돈을 벌거나 입신양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단 말이에요. 피에서 피로 물려받은 운명적인 신분과 노역에도 불구하고, 사물 자체로 바라봤을 때 놀랍고 기특한 결과물이 나왔다면, 이건 헌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거죠. 

 

 

대철 : 몰입 아닐까요, 순간 자신의 처지도 잊고, 자신의 상황이나 입장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작업에 몰두하며 정신적인 영역에 들어서고, 그 완성도에 스스로 만족하는.

정용 : 그렇죠. 일이 힘들어도 거기에 분명 기쁨이 있거든요. 흙을 만지는 사람은 잘 만들었을 때 기뻤을 것이고, 물레 돌리는 사람은 물레질이 잘 되었을 때 기뻤을 것이고, 가마를 때는 사람은 온도가 잘 유지되어 기물이 온전하게 나왔을 때 기뻤을 거예요. 그 기쁨이 지금까지 전달되는 거죠. 그런데 기쁨을 넘어서는, 헌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흔적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대철 : 그런 불합리한 처지에서도 자신의 일에 소소한 기쁨들을 느끼고, 그 안에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마침내 무의식의 상태에 빠질 정도로 집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런 헌신 덕분에 어떠한 의도나 개념도 담기지 않고 그대로 피어난 물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참 기특하네요. 그런데, 우리 도자기의 가치를 정작 일본이나 서구권에서 먼저 바라봐 주고 발견했어요. 만드는 헌신과 별개로, 보는 사람도 깊게 들여다볼 줄 알고 음미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정용 : 네, 솔직히 조선 도자 전체는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안타까울 정도의 수준이에요. 관요 백자는 참 좋죠. 적어도 관리되고 통제된 환경에서 생산했으니까요. 그런데 일반 민간에서 사용했던 그릇들을 보면, 형편없는 것들도 많아요. 두껍고, 거칠고, 음식 담기는 곳에 흠집이 나서 비 위생적이고요. 조금만 꼼꼼하게 신경 쓰면 충분히 곱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예요. 최순우 선생이나 고요섭 선생은 이런 점을 두고 "조선인은 뒷손질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도자기는 반드시 산업으로 끌고 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마에 주문을 의뢰하던 일본은, 결국 도자기 산업으로 부를 이뤘어요. 조선 도공 이삼평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하죠. 왜란 때 일본으로 가서 사무라이 작위를 받고 도공 생활을 시작해, 결국 아리타에서 백자 재료를 발굴해 지역 산업을 일으켰죠. 지금도 아리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도조 이삼평비'가 세워져 있고, 신사에 모셔져 매해 기일에 제사도 지내준대요. 정작 조선 도자는 쇠퇴해 버려서, 19세기 말 즈음이 되면 잘해야 요강 만들고, 일본인들 하청이나 받는 처지가 됐어요.

우리 현대 도자도 오랫동안 갈피를 못 잡았어요. 전후에 국가가 나서서 우리 도예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적이 있어요. 정확하게는 그 당시 캘리포니아 중심으로 일었던 이른바 추상표현 운동을 배우고 온 거죠. 잭슨 폴락 같은 이들의 영향력이 이미 미국 도예 전공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고, 우리 대학교수 1세대들은 그 내용을 배웠던 거예요. 이후 우리 대학교육에서는 한동안 이른바 조형도자, 예술도자라는 것이 교육돼요. 그런데 당시 우리의 경제상황이나 주택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그런 예술조형 오브제를 수용할 수 있었던 공간은 많지 않았어요. 작품을 아무리 만들어도 팔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극소수의 작가들만 할 법한 작업이 대학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아요. 

 

 

대철 : 선생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주로 정갈하고 절제된 힘을 가진 백자였어요. 그 터치와 선을 연결하는 방식이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고요하고 깨끗해서, 조금은 날이 서 있는 느낌도 들었어요. 건축적인 분위기나 조형성도 강했고, 테두리의 대비와 선명함도 있었던 기억이 있고요. 현대적이면서 묘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도 있었는데, 그런 작업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건가요?

정용 : 제 백자 작업은 '당시 조선 도자가 연속적인 맥락을 가지고 발전했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에서 비롯돼요. 몇몇 눈에 밟히는 독특한 조형이나 재밌는 발상들을 잡고, 거기에 있는 맥락을 현대적인 상상력을 더해 풀어내는 거죠. 우리가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할 때 흔히 간과하는 것이, 한 단계 한 걸음 발전하는 맥락이에요. 맥락에서 툭 떨어져서 부분만 수입하거나, 옛날 것을 그대로 재현해서 만드는 수준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과거에 한때 귀하고 어여삐 여겨졌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잊히고 간과되고 있는 가치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자리에 하나씩 재발견해 보고 싶어요. 감동을 줄 만큼 헌신이 담겨있는 그릇들을 바라볼 때마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어떻게 그런 시대에 이런 작품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가장 커요. 그런 의문과 호기심이 제가 도자를 하는 원동력이에요.

대철 : 그런데 최근 작업하시는 사발을 보면, 사뭇 날 것의 느낌이 나요. 툭 던져 놓은 것 같고, 재료도 각각의 색깔과 통제되지 않은 상태들이 많죠. 예전 작업들과 많이 달라진 느낌인데, 어쩌면 다음 단계로 작업이 나아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용 :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사실 사발은 백자 작업 중에도 쉬지 않고 관심을 가져오고 있었어요. 다만 부족하다고 여겨서 남기지 못한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사발과 차를 정말 좋아해서 여기저기 차를 얻어 마시러 다녔어요. 그러면서 명장들이 만든 사발이나 골동품에도 많이 마셔봤죠. 정말 마음에 드는 사발은 무리를 해서 소장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눈만 높아졌나 봐요. 방에도 골동품들이 있고, 오랫동안 만들어 오신 분들의 사발도 많거든요. 그런 작품 옆에 내가 만든 걸 슬그머니 놓아보면, 정말 창피해서 남겨둘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좀 살려서 내 것도 모아보자, 하는 요량으로 만들어서 써 보고 있는데요. 아마 그래서 요새 사발 작업하는구나 하셨을 거예요. 

예전 작업들이 정교해야 하고 기교적으로 잘 맞아떨어져야 했다면, 사발은 보다 자유롭기도 하고, 내 감흥에 따라 작업을 하게 되긴 해요. 오랜 시간 정교하게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와중에, 전혀 다른 형식과 에너지, 특성을 가진 작업을 수행하는 건, 어쩌면 일종의 정반합 아닐까 기대도 하게 돼요. 서로 반대되는 경험들을 중첩해 쌓으면서 나아가 보는 거죠.

대철 : 저는 사발을 좀 특별하게 느낀 이유가, 장식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한 다른 도자기들과 달리 사발은 입에 댄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첫눈에 형태의 의미나 감정을 느끼고, 만져서 흙의 온도도 느끼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입을 대서 맛을 보는 행위로 귀결되니까요. 입에 닿는 그릇들은 아주 직접적인 것 같거든요. 혹시 사발을 만드실 때 특별히 어렵거나 신경 쓰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정용 : 이도다완 아시죠. 소위 일본의 국보로 대접받는 차 사발인데요. 다완 하나를 성과 바꿨다는 뒷이야기를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바라보아도, 참 아름답긴 해요. 사물로서 결코 완결되었다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사람들이 좋아하거든요. 남은 것이 많지 않고, 곁에 두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니, 그 형태를 재현하려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사발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고, 이제는 사발의 정형을 정한 일종의 규범이 생겼어요. 

그에 비춰보면, 제가 만든 것들은 소위 '날라리 사발'이죠. 정형에 부합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대신 동양화의 "화론육법"을 늘 떠올려요. 벌써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내려온, 그림을 그릴 때 따라야 할 중요한 여섯 가지 법인데요. 그중 가장 중요하다 꼽는 부분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이에요. '그림과 먹에 기운이 있어야 하고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저는 사발이 딱 그렇다고 생각해요. 정호다완이니, 이도다완이니,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 낸 모범을 잘 따르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기운생동한 사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해요. 

기운이라는 게, 누군가는 에너지, 힘, 생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감성적으로는 인간의 향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내가 만든 것들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거예요. 정말 기운생동하는지, 충분한 에너지가 있는지. 좋은 골동품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과 같이 옆에 놓고 비교해 보는 이유는, 그걸 보다 직관적으로 느끼는 방법이에요. 그렇게 견주어 볼 때에 너무 초라해 보이면, 그건 기운생동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철 : 성과 바꿀 만큼의 가치라는 것이 단지 규범에서 나오지는 않았겠죠. 당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에 무언가를 흔적을 남긴 물건들이 이른바 '대명물'이란 이름으로 시대를 건너 왔고, 오늘날까지도 그 남다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네요.

일본이 도자를 산업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에게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을 것 같아요. 그들은 시대별로 ‘다테(だて)’, ‘이키(いき)’, ‘와비(わ び)와 사비(さび)’ 같은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감상을 세분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뒀어요. 그 자산이 지금의 자포니즘을 구성하고 있죠. 미국만 해도, 2차 전쟁 이후 많은 갤러리들이 생기고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불세출의 평론가가 등장해서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냈어요. 그들에게는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주어진 것이죠. 

우리에게는 간편한 낱말만 있어요. '한국적인 유려한 선', '단아한 품새'처럼 몇 안 되는 불분명한 표현이 다예요. 아름다움이란 에너지이자 시인데, 표현 몇 개로만 흩어버리니 감정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져 버려요. 분명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물건들이 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부분까지 집요하게 파고들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에 곧바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스스로 물건 자체를 바라보려 하기보다, 배경 드라마에 의존하고 안전한 규범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거예요. 바라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걸 느끼고 만드는 사람들이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다른 가능성들이 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정용 : 말씀하시니 어릴 적 국어 시간에 시를 배우던 기억이 나네요. 문장을 인수분해 하듯 해체해서, '정답'이란 것을 알려주잖아요. 마치 분재 다듬듯이, 모든 가능성의 싹을 꺾고 예쁘게 잘라내는 것 같아요. 

저는 만드는 게 일이라, 너무 많은 말들을 내는 건 조심스럽긴 해요. 작업에 삼라만상을 담다 보면, 내 안에서 논리가 안 맞는 경우들이 생기거든요. 보다 단순하게, 재료를 이해하고, 어떤 표현들을 상상하여 구체화시키며 만들어 가는 일에 집중하게 돼요. 예를 들어 사발이라면, 이도다완이든 뭐든 바라보며 쓴 시간이, 만들면서 쓴 시간보다 몇 배는 많을 거예요. 저는 단어로 정의해서 이해하기보다 감각으로 느끼고, 무수한 이미지들이 지나가는 중에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건 왜 좋아 보이고, 이건 왜 옹색해 보이는지, 예전에는 좋았는데 왜 지금은 별로인지, 왜 어떤 것들은 다른 경험을 한 후에 더 좋아 보이는지를 고민하죠.  

말씀하신 것처럼 적절한 언어와 좋은 설명이 부족하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소위 문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가까운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도자든 음악이든, 서울 시민들 중에 1년에 한 번이라도 음악회나 미술관에 꼭 가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서울이라는 도시는 일하는 공간이고, 그런 목적에 부합하도록 효율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이지, 문화적인 여유를 느끼기는 어려운 곳이에요. 사람들은 늘 바쁘고, 그들의 시선은 이런 곳까지 미치기엔 어렵겠죠. 

긍정적인 건, 저희가 매년 (서울대 도자공예) 판매전을 여는데, 해가 갈수록 관심을 갖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기분 좋은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죠. 현대인들에게 갈증이 있구나,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설명 보다 중요한 건, 이해하고자 하는 주체의 관심이겠죠. 그 관심이 있어야 바라보는 시간도 확보할 수 있고, 바라봄에서 아주 조금씩 이해의 깊이가 더해가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길 테고, 해석이 모이면서 곧 다른 세계가 열리게 되겠죠. 

예전에 스시 장인 지로에 대한 다큐를 극장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 좁디좁은 지하상가에서 4만엔 정도 하는 스시 한 접시를 만드는데, 거기까지 기꺼이 와서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거기서 뭘 보는 걸까요. 어쩌면 단 몇 퍼센트의 차이일지도 몰라요. 고작 몇 퍼센트 더 맛있고, 고작 몇 퍼센트 더 좋고.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너무 좋아서 기꺼이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레리치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단 몇 퍼센트의 차이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고, 감성이 잘 훈련된 사람들이 찾는 거죠. 한 나라의 문화와 공예의 발전은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때 보장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그 작은 차이에 내어줄 시간이 없을 때 소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철 : 그렇죠. 단 몇 프로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단 말이에요. 비즈니스에서는 지켜야 하는 방식이라는 게 있어요. 수익을 만들어 생존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든 아껴야 하고, 생산과 원료에 분명한 한계선이 존재해요. 개인의 의지로는 그 선을 넘어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요. 거기에 도전하려면 처음부터 다 바꿔야 되는 거죠. 그들의 방식을 따르면 그들과 같은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완전히 다른 길을 개척해야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작은 몇 프로의 차이라도, 인간의 감각으로 다 느낄 수 있어서, 결국에 '이건 다르구나'하며 마음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생겨요. 그걸 모른다면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되는 거죠.

정용 :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안목인 것 같아요. 안목이 그렇게 대단한 단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다못해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면을 어떻게 할지 아는 건 안목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소한 것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되는 거지, 무슨 어마무시한 교육으로 안목을 갖출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선생님들은 열어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공감을 불러일으켜주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는 것도 선생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대화 한정용김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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